핑크 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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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핑크 플로이드는 1960년대 영국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사이키델릭 음악을 선구하며 실험적인 사운드와 화려한 무대 연출로 명성을 얻었다.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닉 메이슨, 리처드 라이트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The Dark Side of the Moon》, 《The Wall》 등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앨범들을 발표했다.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억 5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14년 《The Endless River》를 마지막 앨범으로 발표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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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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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핑크 플로이드 |
로마자 표기 | Pink Peulloideu |
별칭 | Sigma 6 (1963–1964) The Meggadeaths (1964) The Abdabs (1964) The Screaming Abdabs (1964) Leonard's Lodgers (1964) The Spectrum Five (1964) The Tea Set (1964–1965) The Pink Floyd Sound (1965) The Pink Floyd (1965–1967) |
출신지 | 런던, 잉글랜드 |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 사이키델릭 록 스페이스 록 익스페리멘털 록 아레나 록 애시드 록 프로토 프로그 |
활동 기간 | 1965년–1994년 2005년 2007년 2013년–2014년 2022년 |
레이블 | EMI EMI 컬럼비아 타워 하베스트 캐피톨 컬럼비아 소니 뮤직 팔로폰 |
파생 그룹 | 닉 메이슨의 소서풀 오브 시크릿츠 |
웹사이트 | pinkfloyd.com |
구성원 | |
현재 구성원 | 닉 메이슨 데이비드 길모어 |
과거 구성원 | 시드 배럿 로저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밥 클로스 |
음반 정보 | |
음반 목록 | 음반 및 싱글 노래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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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포크송 등을 섞은 록 음악에 몽환적인 사운드와 대규모 장치를 활용한 라이브 공연,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와 정치 문제를 다룬 철학적 가사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狂気』(The Dark Side of the Moon)는 5천만 장, 『더 월』(The Wall)은 3천만 장, 『소원을 말해봐』(Wish You Were Here)는 2천3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레코드와 CD 총 판매량은 2억 장에서 2억 5천만 장 이상으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를 배경으로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이는 기교파는 아니었다. 그들의 음악이 지닌 부유감, 권태감, 몽환적인 사운드는 독특한 긴장감과 고양감으로 연결되었다. 그들의 음악성은 KLF 등 후배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65년, 런던 폴리테크닉 리전트 스트리트 건축예술학교(현재 웨스트민스터 로 스쿨)의 동급생이었던 로저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닉 메이슨은 현대음악에 관한 논쟁을 계기로 "시그마 6(Sigma 6)"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이후 "메가데스(The Meggadeaths)", "아브다브스(The Abdabs)", "스크리밍 아브다브스(The Screaming Abdabs)", "아키텍추럴 아브다브스(The Architectural Abdabs)", "레너즈 로저스(Leonard's Lodgers)", "스펙트럼 파이브(The Spectrum Five)", "티 세트(The Tea Set)" 등 여러 이름으로 바꾸며 활동하다가, 시드 바렛과 기타리스트 밥 클로즈(Bob Klose)를 영입하여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Pink Floyd Sound)"로 재출발했다. 이는 바렛이 좋아했던 두 명의 피드먼트 블루스 음악가 핑크 앤더슨(Pink Anderson)과 플로이드 카운슬(Floyd Council)의 이름을 딴 것이다.
초기에는 롤링 스톤스와 후의 노래를 연주했지만, 점차 즉흥 연주와 라이트 쇼를 도입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밥 클로즈는 블루스 음악을 지향했기에 1965년 중반에 밴드를 탈퇴했고, 바렛이 리드 기타를 맡으며 활발하게 곡 작업을 시작했다. 밴드 이름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당시 매니저의 제안 때문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 전성기에 클럽 UFO 등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펼치며 인지도를 높였다.[174] 1967년 시드 바렛 작곡의 싱글 "Arnold Layne"으로 데뷔, 속옷 도둑을 암시하는 가사 때문에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지만 영국 차트 20위에 올랐다. 뒤이은 싱글 "See Emily Play"는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첫 정규 음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매했다. 당시 비틀즈가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제작하고 있었고,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은 비틀즈의 녹음 과정을 참관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바렛의 원맨 밴드였으나, 바렛은 과도한 LSD 복용으로 기행을 보이며 밴드 활동에 지장을 초래했다. 1967년 초, 바렛은 주기적으로 LSD를 사용했으며, 닉 메이슨은 "모든 것과 완전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묘사하였다.[201] 결국 바렛은 1968년 3월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데이비드 길모어를 영입하여 4인조로 재편되었고, 사이키델릭 록에서 벗어나 더욱 독창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하코네에서 열린 야외 페스티벌 "하코네 아프로디테"에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여 환상적인 라이브 공연을 펼쳤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188]
이 시기부터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는 밴드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밴드의 음악과 가사에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마거릿 대처와 메리 화이트하우스 같은 영국 정치인에 대한 냉소를 담았다.
1971년 발매된 《Meddle》은 영국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82주 동안 머물렀다.[27] 이 앨범은 1960년대 후반 시드 배릿이 이끌던 그룹과 새롭게 등장하는 핑크 플로이드 사이의 전환점을 보여준다.[27]
1975년 핑크 플로이드는 새 음반 작업에 착수했다. 앨런 파슨스는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활동으로 인해 밴드와의 작업을 거절했고, 브라이언 험프리스가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새 음반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성공으로 밴드 멤버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리처드 라이트는 이 시기를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고, 로저 워터스는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했다.[38]
1983년 로저 워터스의 주도로 제작된 《더 파이널 컷》은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6위에 올랐다.[49] 이 음반의 모든 가사와 음악은 로저 워터스가 작곡했다.[50]
1987년 데이비드 길모어는 밴드의 주도권을 잡고 로저 워터스와의 법적 분쟁 끝에 핑크 플로이드 활동을 재개했다. 신생 핑크 플로이드는 1987년에 『鬱 (음반)』을 발표, 대대적인 투어를 감행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부활을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1994년에는 그래미상 최우수 록 연주 부문을 수상한 "Marooned (고독)"이 수록된 앨범 『対 (음반)』을 발표했다.
2005년 7월 2일,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 워터스, 길모어, 메이슨, 라이트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라이브 8에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공연했다.[64]
2. 1. 결성 이전(1962-1964)
로저 워터스와 닉 메이슨은 런던 폴리테크닉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만났다.[3] 그들은 처음에 키스 노블과 클라이브 메트칼프, 그리고 노블의 여동생 쉴레이그가 결성한 그룹에서 함께 음악을 연주했다. 같은 건축학과 학생이었던 리처드 라이트는 그 해 후반에 합류하여 그룹은 6인조인 시그마 6이 되었다. 워터스는 리드 기타를, 메이슨은 드럼을, 라이트는 리듬 기타를 맡았다가 나중에 키보드로 옮겼다.[4] 이 밴드는 사적인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 지하의 다방에서 연습했다. 그들은 서처스의 노래와 그들의 매니저이자 작곡가인 동료 학생 켄 채프먼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했다.1963년 9월, 워터스와 메이슨은 런던 하이게이트의 39 스탠호프 가든스에 있는 마이크 레너드 소유의 아파트로 이사했다.[5] 그는 근처 혼시 예술대학과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의 파트타임 강사였다. 메이슨은 1964년 학년이 끝난 후 이사했고, 기타리스트 밥 클로스가 1964년 9월에 이사하면서 워터스는 베이스로 옮겼다. 시그마 6은 메가데스, 압답스, 스크리밍 압답스, 레너드스 로저스, 스펙트럼 파이브 등 여러 이름을 거쳤다가 티 세트로 정착했다. 1963년 9월, 메트칼프와 노블이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떠나자,[8] 기타리스트 시드 바렛이 스탠호프 가든스에서 클로스와 워터스에 합류했다. 바렛은 다른 멤버들보다 두 살 어렸으며 1964년에 캠버웰 예술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2] 워터스와 바렛은 어린 시절 친구였으며, 워터스는 종종 바렛을 방문하여 바렛 어머니의 집에서 그가 기타를 치는 것을 보곤 했다. 메이슨은 바렛에 대해 "모두가 매우 사춘기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방식으로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시대에, 시드는 유행에 뒤떨어지게 활달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기억은 그가 나에게 다가와 자기소개를 했던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클로스는 밴드를 영국 공군(RAF) 기술자인 크리스 데니스라는 가수에게 소개했다. 1964년 12월, 그들은 라이트의 친구 중 한 명을 통해 웨스트햄프스테드의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 시간을 확보했는데, 그 친구가 잠시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당시 학업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라이트는 참여하지 않았다. 1965년 초 영국 공군이 데니스에게 바레인 근무를 배정하자, 바렛이 밴드의 프런트맨이 되었다. 그 해 후반, 그들은 런던 켄싱턴 하이 스트리트 근처의 카운트다운 클럽의 레지던트 밴드가 되었고, 밤늦게부터 이른 아침까지 90분짜리 세트를 3개씩 연주했다. 이 기간 동안, 노래 반복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트를 연장해야 할 필요성에 박차를 받아 밴드는 "노래를 긴 솔로로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메이슨은 적었다. 부모의 압력과 대학 강사들의 조언에 따라 클로스는 1965년 중반에 그만두었고 바렛이 리드 기타를 맡았다.[9]
1965년 말, 이들은 처음으로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라고 불렸다. 이 이름은 배럿이 만들었으며, 티 세트라는 자신의 밴드와 같은 이름을 가진 밴드가 자신이 주로 공연하는 곳 중 한 곳에서 공연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된 순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름의 유래는 배럿의 우상이었던 피드몬트 블루스 연주자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실의 이름에서 따왔다.[195]
2. 2. 결성 초기(1965-1967)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 전성기에 클럽 UFO(UFO 클럽) 등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펼치며 점차 인지도와 평가를 높였다.[174] 1967년, 시드 바렛 작곡의 싱글 "Arnold Layne"으로 데뷔했다. 이 곡은 속옷 도둑을 암시하는 가사 때문에 라디오 런던에서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지만, 영국 차트 20위에 올랐다. 뒤이은 두 번째 싱글 "See Emily Play"는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했다.같은 해, 핑크 플로이드는 첫 번째 정규 음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매했다. 이 음반을 녹음하던 당시,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비틀즈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제작하고 있었고,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은 비틀즈의 녹음 과정을 참관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바렛의 원맨 밴드였다. 그러나 바렛은 과도한 LSD(약물) 복용으로 기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밴드 활동에 지장을 초래했다. 1967년 초까지 바렛은 주기적으로 LSD를 사용했으며, 닉 메이슨은 "모든 것과 완전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묘사하였다.[201]
2. 2. 1. 핑크 플로이드의 탄생
1965년, 런던 폴리테크닉 리전트 스트리트 건축예술학교(현재 웨스트민스터 로 스쿨(Westminster Law School))의 동급생이었던 로저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닉 메이슨은 현대음악에 관한 논쟁을 계기로 "시그마 6(Sigma 6)"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초창기에는 로저가 기타를 담당했고, 이들 외에 클라이브 메트카프(베이스), 키스 노블과 줄리엣 게일(보컬)이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밴드 이름을 "메가데스(The Meggadeaths)", "아브다브스(The Abdabs)", "스크리밍 아브다브스(The Screaming Abdabs)", "아키텍추럴 아브다브스(The Architectural Abdabs)", "레너즈 로저스(Leonard's Lodgers)", "스펙트럼 파이브(The Spectrum Five)" 등으로 여러 번 바꾸면서 활동하다가, "티 세트(The Tea Set)"로 정착했지만, 난항을 겪고 활동을 중단했다. 같은 해 후반, 워터스, 라이트, 메이슨은 옛 친구 시드 바렛과 기타리스트 밥 클로즈(Bob Klose)를 초대하여 밴드 이름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Pink Floyd Sound)"로 바꾸고 재출발했다. 이는 바렛이 좋아했던 두 명의 피드먼트 블루스(Piedmont blues) 음악가인 핑크 앤더슨(Pink Anderson)과 플로이드 카운슬(Floyd Council)의 이름을 딴 것이다.초기에는 블루스 외에도 롤링 스톤스와 후의 노래를 연주했지만, 점차 즉흥 연주와 라이트 쇼를 도입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밥 클로즈는 블루스 음악을 지향했기에 1965년 중반에 밴드를 탈퇴했고, 바렛이 리드 기타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바렛은 활발하게 곡 작업을 시작하여 오리지널 곡의 연주가 점차 늘어났다.
참고로, 밥이 탈퇴했을 때 밴드 이름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에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로 변경했다. 밴드 이름을 짧게 한 것은 당시 매니저의 제안 때문이었다.
1965년 후반, 그룹은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Pink Floyd Sound)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렛은 다른 밴드인 티 세트(Tea Set)도 그들의 공연 중 하나에서 공연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즉흥적인 순간에 그 이름을 만들었다.[10] 1966년까지 그룹의 레퍼토리는 주로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곡으로 구성되었고, 1966년 12월 마퀴 클럽(Marquee Club) 공연을 포함하여 유료 공연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런던정경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강사인 피터 제너(Peter Jenner)가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제너는 바렛과 라이트가 만들어낸 음향 효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앤드류 킹과 함께 그들의 매니저가 되었다.[11] 두 사람은 음악 산업(music industry)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킹의 상속 재산을 사용하여 블랙힐 엔터프라이즈(Blackhill Enterprises)를 설립하여 약 1000GBP 상당의 새로운 악기와 장비를 밴드를 위해 구입했다. 이 무렵 제너는 밴드 이름에서 "사운드(Sound)"를 빼라고 제안했다.
제너와 킹의 지도 아래 핑크 플로이드는 올 세인츠 홀(All Saints Hall)과 마퀴(Marquee)를 포함한 여러 장소에서 공연하며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음악(underground music)계의 일부가 되었다.[12] 카운트다운 클럽(Countdown Club)에서 공연하는 동안 밴드는 긴 기악 연주를 시도했고, 컬러 슬라이드와 가정용 조명으로 투사되는 초보적이지만 효과적인 라이트 쇼를 통해 이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제너와 킹의 사회적 관계는 밴드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주목받는 보도를 받고, "지난밤 새로운 잡지 ''IT'' 출시 행사에서 핑크 플로이드라는 팝 그룹이 격렬한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그들의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일련의 기이한 색상의 형태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매우 사이키델릭한 것으로 보였다."고 언급한 ''선데이 타임스'' 기사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13]
1966년 밴드는 블랙힐 엔터프라이즈와의 사업 관계를 강화하여 제너와 킹, 그리고 밴드 멤버 각각이 6분의 1의 지분을 갖는 동등한 파트너가 되었다. 1966년 후반까지 그들의 세트는 R&B 표준곡이 줄어들고 바렛의 오리지널 곡이 늘어났는데, 이중 많은 곡이 그들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다. 공연 횟수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톨릭 청소년 클럽에서 공연한 후, 주인은 그들의 공연이 음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의 매니지먼트가 청소년 단체 주인을 상대로 소액 청구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지역 판사는 주인의 결정을 지지했다. 밴드는 런던의 UFO 클럽(UFO Club)에서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곳에서 팬층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바렛의 공연은 열정적이었고, "뛰어다니고…미치고…즉흥적으로…[영감을 받아] 그의 한계를 넘어서…매우 흥미로운 영역으로 들어갔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라고 전기 작가 니콜라스 샤프너(Nicholas Schaffner)는 적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 전성기에 클럽 UFO(UFO 클럽)와 같은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펼쳤다.[174] 점차 인지도와 평가를 높여 여러 레코드 회사의 경쟁 끝에 EMI와 계약을 맺었다.
1967년, 시드 바렛 작곡의 싱글 "아놀드 레인"(Arnold Layne)으로 데뷔했다. 가사가 속옷 도둑을 암시하는 내용이었기에 라디오 런던에서는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지만, 영국 차트 20위에 올랐다. 뒤이은 두 번째 싱글 "시 엠밀리 플레이"(See Emily Play)는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했다.
핑크 플로이드가 음반 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였다.[199] 여러 음반 회사와 협상을 하는 동안에 인터내셔널 타임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UFO 클럽의 매니저였던 조 보이드와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 출연 계약 담당인 브라이언 모리슨이 핑크 플로이드가 웨스트 햄스테드의 사운드 테크닉스에서 노래를 녹음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그로부터 3일 후, 핑크 플로이드는 EMI와 5000GBP의 선금을 받게 됐다. EMI는 이후 1967년 1월 29일에 녹음했던 〈Arnold Layne〉과 〈Candy and a Currant Bun〉을 1967년 3월 10일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첫 번째 싱글로 발표하였다.[200] 〈Arnold Layne〉은 가사에 있는 크로스드레싱의 언급으로 인해 일부 라디오 방송국에서 금지곡이 되었으나, 소매상들이 음반의 시장 가격을 조작한 것과 같이 핑크 플로이드의 싱글이 영국에서 인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EMI 컬럼비아는 1967년 6월 16일,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싱글 〈See Emily Play〉를 발매했다. 〈See Emily Play〉는 영국 차트에서 6위를 기록했던 싱글 〈Arnold Layne〉보다 조금 더 잘 판매되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BBC의 "더 룩 오브 더 위크(The Look of the Week)"라는 프로그램에서 공연을 하면서 박학다식한 워터스와 배럿에게 MC였던 한스 켈러가 둘에게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기도 하였고, 출연자들의 노래와 연주를 립싱크로 하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탑 오브 더 팝스(Top of the Pops)"에도 출연하였다.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두 번 더 음반을 발매했고, 세 번째 컴백에 이르러서는 배럿의 행동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가 처음으로 배럿의 행동에서 변화가 생긴 것을 알아차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67년 초까지 배럿은 주기적으로 LSD를 사용하고 있었고, 메이슨은 "모든 것과 완전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묘사하였다.[201]
모리슨과 EMI의 제작자 노먼 스미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첫 음반 계약을 협상하였고, 이 계약의 일환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첫 앨범을 런던의 EMI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로 합의가 되었다.[202] 메이슨은 녹음 문제에 대해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스미스는 배럿이 자신의 제안과 건설적인 비판을 말해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언급하면서 메이슨의 말을 부정했다. 마침내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은 1967년 8월에 발매되었고, 곧 영국 차트에 14주 동안 상위권에 머무르면서 6위를 기록하였다. 한 달 후에는 타워 레코드의 레이블에서도 발매되었다.[203] 핑크 플로이드는 계속 UFO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서 많은 팬들이 생겨났지만, 배럿의 정신이 쇠약해져 가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는 처음에 배럿의 오락가락한 행동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를 바랐지만, 제너와 그의 조수이자 마크 볼란의 아내였던 준 차일드를 포함한 몇 명은 이에 대해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같은 해, 첫 번째 정규 음반 《밤의 종소리》(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매했다. 이 음반을 녹음하던 당시,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비틀즈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제작하고 있었고, 멤버들은 비틀즈의 녹음 과정을 참관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배럿의 원맨 밴드였다. 그러나 과도한 LSD(약물) 복용으로 배럿의 기행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며 밴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968년, 그의 역할을 보완하기 위해 데이비드 길모어가 합류하여 일시적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5인조가 되었다. 배럿은 라이브에는 참여하지 않고 작곡에 전념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배럿의 상태는 너무 심각하여 그조차 불가능했다. 같은 해 발표된 "꿈에 사라지는 줄리아"(Julia Dream)[175]는 싱글 B면에 수록되었지만 인기곡 중 하나였다. 이 곡은 로저 워터스의 작곡이다.
"National Jazz and Blues Festival"을 포함한 다른 쇼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출연을 취소해 달라는 많은 요청을 받은 킹은 음악 잡지 등에 현재 배럿이 신경 쇠약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워터스는 정신과 의사인 R. D. 레잉과 배럿과의 만남을 주선하려 하였고, 배럿을 약속 장소로 데리고 갔으나 배럿은 차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음악가인 동시에 의사로 자리를 잡은 새뮤얼 허트와 포르멘테라섬에서 머물어 안정을 취하는 것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도 핑크 플로이드는 9월 동안에 유럽에 잡혀 있었던 콘서트를 하고, 10월에는 처음으로 미국 투어를 하였다. 하지만 미국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배럿의 상태가 계속 악화되었다. 11월에는 딕 클라크와 팻 분의 쇼에 출연하는 동안, 배럿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딴 곳으로 눈을 돌리면서 호스트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쇼에서 〈See Emily Play〉를 립싱크해야 할 때에는 입술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당혹스러운 일이 있은 후에, 킹은 핑크 플로이드의 미국 방문을 끝내고 바로 런던으로 돌려보냈다. 핑크 플로이드가 돌아온 후 잉글랜드를 투어하는 동안 지미 헨드릭스가 콘서트를 도와주었으나 투어가 계속되면서 배럿의 우울증은 악화되기만 했고, 12월에 핑크 플로이드가 새로운 멤버를 추가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도달하였다.[204]
결국 배럿은 1968년 3월 밴드를 탈퇴했다. 이로 인해 핑크 플로이드는 워터스, 라이트, 메이슨, 길모어 4인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배럿 탈퇴 후, 처음에는 싱글 곡을 몇 곡 만들었지만, 밴드는 방향을 전환하여 사이키델릭 록에서 벗어나 더욱 독창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1968년 발표된 "It Would be So Nice"(리처드 라이트 작곡) 이후로 싱글을 발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의 직관적인 즉흥 음악이 아닌, 건축학교 출신의 강점을 살린 곡 구성 능력을 갈고 닦았다. 이렇게 하여 1968년 발표된 두 번째 정규 음반 《A Saucerful of Secrets》은 약 12분짜리 기악곡인 타이틀곡 "A Saucerful of Secrets"을 수록하고 있다.
2. 2. 2. EMI와의 계약
1967년부터 핑크 플로이드는 음반 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99] 여러 음반 회사와 협상하는 동안, 조 보이드와 브라이언 모리슨은 핑크 플로이드가 사운드 테크닉스에서 노래를 녹음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1967년 2월 15일, 핑크 플로이드는 EMI와 계약을 체결하고 5000GBP의 선금을 받았다.EMI는 1967년 3월 10일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첫 번째 싱글 〈Arnold Layne〉과 〈Candy and a Currant Bun〉을 발표하였다.[200] 〈Arnold Layne〉은 가사에 크로스드레싱을 언급하여 일부 라디오 방송국에서 금지곡이 되었으나, 영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EMI 컬럼비아는 1967년 6월 16일,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싱글 〈See Emily Play〉를 발매했다. 〈See Emily Play〉는 영국 차트에서 6위를 기록하며 〈Arnold Layne〉보다 더 나은 판매량을 보였다. 핑크 플로이드는 BBC의 "더 룩 오브 더 위크(The Look of the Week)"에 출연하여 한스 켈러의 어려운 질문을 받았고, "탑 오브 더 팝스(Top of the Pops)"에도 출연하였다.
모리슨과 EMI 제작자 노먼 스미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첫 음반 계약을 협상했고, 계약의 일환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런던 EMI 스튜디오에서 첫 앨범을 녹음하기로 합의했다.[202]
2. 2. 3.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모리슨과 EMI 프로듀서 노먼 스미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첫 녹음 계약을 협상했다. 계약의 일환으로 밴드는 런던의 EMI 스튜디오에서 첫 번째 앨범을 녹음하기로 합의했다.[17] 메이슨은 세션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고 회상했다. 스미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시드 배럿이 그의 제안과 건설적인 비판에 무반응이었다고 말했다. EMI-Columbia는 1967년 8월에 《빛과 어둠의 문지기》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6위에 올랐으며 영국 차트에서 14주 동안 머물렀다. 한 달 후, 타워 레코드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18] 핑크 플로이드는 UFO 클럽에서 여전히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지만, 배럿의 정신적 붕괴는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룹은 처음에는 그의 변덕스러운 행동이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랐지만, 제너와 그의 조수인 준 차일드를 포함한 일부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럿을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그는 너무... 갔더군요. 로저 워터스와 저는 그를 일으켜 세웠고 무대까지 데려갔습니다... 밴드가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시드는 그냥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기타를 목에 걸고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19]2. 3. 과도기(1968-1972)
이 시기부터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는 밴드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밴드의 음악과 가사에 자신의 사상을 반영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마거릿 대처와 메리 화이트하우스 같은 영국 정치인에 대한 냉소를 가사에 담았다.1971년 핑크 플로이드는 하코네에서 열린 야외 페스티벌 "하코네 아프로디테"에 마지막 순서로 등장했다. 해가 저물고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펼쳐진 환상적인 라이브 공연은 현재까지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악기를 튜닝하는 소리를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착각한 관객들이 환호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2021년에는 "하코네 아프로디테" 영상 일부가 발견되어 일본에서 "원자심모 (하코네 아프로디테 50주년 기념반)"으로 발매되었다.[188]
2. 3. 1. 《A Saucerful of Secrets》(1968)
1967년 12월,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럿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데이비드 길모어를 다섯 번째 멤버로 영입했다. 길모어는 1960년대 초 케임브리지 기술학교에서 배럿과 함께 공부하며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에 기타와 하모니카를 함께 연주했고, 이후 히치하이크로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며 거리 공연을 했다.1968년 1월, 블랙힐 엔터프라이즈는 길모어를 밴드의 새 멤버로 발표했고, 배럿은 비연주 작곡가로 남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렛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1968년 3월 초 핑크 플로이드는 사업 파트너들과 만나 밴드의 미래를 논의했고, 배럿은 탈퇴에 동의했다. 블랙힐은 1968년 4월 6일 바렛의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바렛이 떠난 후, 가사 작곡과 창작 방향의 부담은 대부분 로저 워터스에게 돌아갔다. 처음에 길모어는 밴드의 유럽 TV 출연에서 배럿의 목소리에 맞춰 연주했지만, 대학 순회 공연에서는 리처드 라이트와 워터스의 곡을 연주하며 배럿의 곡은 피했다.
2. 3. 2. 《Ummagumma》(1969)와 《Atom Heart Mother》(1970)

'엄마구마'(Ummagumma)는 핑크 플로이드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앨범이었다. EMI의 하베스트 레코드(Harvest Records) 레이블을 통해 더블 LP로 발매되었으며, 앞면 두 곡은 맨체스터 상업대학(Manchester College of Commerce)과 버밍햄(Birmingham)의 클럽 마더스(Mothers (music venue))에서 녹음된 라이브 공연을 담고 있다. 뒷면에는 각 멤버의 실험적인 곡이 한 곡씩 수록되어 있다.[220] '엄마구마'는 1969년 11월에 발매되어 호평을 받았다.[220] 영국 차트에서 21주 동안 머물며 5위에 올랐다.[220]
1970년 10월, 핑크 플로이드는 '원자 심장 어머니'(Atom Heart Mother)를 발매했다.[220] 초기 버전은 1월에 영국에서 처음 공개되었지만, 믹싱에 대한 의견 차이로 론 기신(Ron Geesin)이 사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기신은 곡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밴드의 창작적 참여가 적어 제작 과정은 어려웠다. 그는 앨범 녹음을 위해 고용된 합창단장 존 올디스(John Alldis)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스미스(Smith)는 총괄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았고, 이 앨범은 그가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 작업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길모어(Gilmour)는 이를 두고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깔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220] '원자 심장 어머니'는 핑크 플로이드의 첫 번째 1위 앨범이 되었으며 영국 차트에서 18주 동안 머물렀다.[220] 워터스는 '원자 심장 어머니'를 비판하며,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무도 다시는 듣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220] 길모어는 한때 이 앨범을 "쓸모없는 것들의 묶음"이라고 묘사하며, "그 당시 우리는 바닥을 긁고 있었다"고 말했다.[220]
핑크 플로이드는 1970년 미국과 유럽 전역을 광범위하게 순회 공연했다.[220] 1971년,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독자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고, 처음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메이슨(Mason)과 라이트(Wright)는 아버지가 되어 런던에 집을 샀고, 여전히 독신인 길모어는 에식스(Essex)에 있는 19세기 농가로 이사했다. 워터스는 이즐링턴(Islington)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개조된 창고에 녹음 스튜디오를 설치했다.[220]
2. 3. 3. 《Meddle》(1971)과 《Obscured by Clouds》(1972)
1971년, 핑크 플로이드는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독자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고, 처음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메이슨과 라이트는 아버지가 되어 런던에 집을 샀고, 길모어는 에식스에 있는 19세기 농가로 이사했다. 워터스는 이즐링턴(Islington)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개조된 창고에 녹음 스튜디오를 설치했다.[26] 같은 해 1월, '원자 심장 어머니'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핑크 플로이드는 새로운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26] 중심 주제가 부족하여 여러 비생산적인 실험을 시도했는데, 엔지니어 존 레키(John Leckie)는 녹음 세션이 종종 오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일찍 끝났으며,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레코드 회사와의 접촉은 전혀 없었고, 레이블 매니저가 와인 몇 병과 대마초 몇 개를 가지고 가끔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는."라고 설명했다.[26] 밴드는 기본적인 사운드나 기타 리프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또한 에어 스튜디오(Air Studios)에서 며칠 동안 다양한 가정 용품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월광'(The Dark Side of the Moon)과 '너의 소원이 명령이라면' 사이에 다시 시도되었다.1971년 첫 내한 당시, 하코네(箱根)에서 열린 야외 페스티벌 "하코네 아프로디테"의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여, 해가 저물고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환상적인 라이브 공연을 선보였다. 이 라이브는 현재까지도 전설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악기를 튜닝하는 소리를 오리지널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착각한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2021년, "하코네 아프로디테" 영상의 일부가 발견되어 일본에서 "원자심모 (하코네 아프로디테 50주년 기념반)"으로 발매되었다.[188]
2. 4. 도약기(1973-1975)
1971년 발매된 《Meddle》은 영국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82주 동안 머물렀다.[27] 이 앨범은 1960년대 후반 시드 배릿이 이끌던 그룹과 새롭게 등장하는 핑크 플로이드 사이의 전환점을 보여준다.[27] ''롤링 스톤''의 장-샤를 코스타는 "이 앨범은 리드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가 그룹의 진정한 형성력으로 부상했음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룹이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했음을 강력하고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28]《Meddle》 제작은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되었다. 밴드는 1971년 4월 상반기에 녹음을 했지만, 하반기에는 돈캐스터와 노리치에서 공연을 한 후 4월 말에 다시 녹음을 위해 돌아왔다. 5월에는 런던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의 세션, 리허설, 그리고 영국 전역의 콘서트를 병행했다. 6월과 7월에는 유럽 전역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고, 8월에는 극동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연을 한 후 9월에 유럽으로 돌아왔다.[30] 10월에는 콘서트 영화 폼페이에서의 핑크 플로이드 라이브를 제작했고, 11월에는 미국 투어를 진행했다.[30]
''NME''는 이 앨범을 "매우 훌륭한 앨범"이라고 평가하며, "에코즈"를 "플로이드가 추구해 온 정점"이라고 꼽았다. 그러나 ''멜로디 메이커''의 마이클 왓츠는 이 앨범을 실망스럽다고 평가하며 "존재하지 않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라고 부르고, 핑크 플로이드를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많은 소리와 격노"라고 일축했다.[29]
발매년 | 앨범명 (한국어) | 앨범명 (원제) | 영국 차트 최고 순위 | 미국 차트 최고 순위 | 미국 판매량 |
---|---|---|---|---|---|
1971년 | 참견 | Meddle | 3 | 70 | 200만달러 |
1972년 | 구름의 그림자 | Obscured By Clouds | 6 | 46 | 50만달러 |
1973년 | 광기 | The Dark Side Of The Moon | 2 | 1 | 1500만달러 |
1973년 | 멋진 한 쌍 (컴필레이션 앨범) | A Nice Pair | 21 | 36 | 50만달러 |
1975년 | 그대가 여기에 있기를 | Wish You Were Here | 1 | 1 | 600만달러 |
2. 4. 1.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
이 섹션은 원본 소스에 해당 내용이 없으므로, 내용을 생성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이전 출력과 동일하게 유지합니다.2. 4. 2. 《Wish You Were Here》(1975)
《그대가 여기에 있기를》(Wish You Were Here영어)은 1975년에 발매된 핑크 플로이드의 정규 음반이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37]
2. 5. 로저 워터스 시기(1976-1985)
1975년 핑크 플로이드는 새 음반 작업에 착수했다. 앨런 파슨스는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활동으로 인해 밴드와의 작업을 거절했고, 브라이언 험프리스가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새 음반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성공으로 밴드 멤버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리처드 라이트는 이 시기를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고, 로저 워터스는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했다.[38] 데이비드 길모어는 기존 음악을 개선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고, 닉 메이슨은 결혼 생활 실패로 인한 무기력감으로 드럼 연주에 어려움을 겪었다.[38]몇 주 후, 워터스는 새로운 콘셉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1974년 유럽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세 곡이 새 앨범의 시작점이 되었다. 길모어가 우연히 작곡한 네 개의 음으로 된 기타 프레이즈는 워터스에게 시드 배릿을 떠올리게 했다.[38] 이 곡들은 밴드의 전 동료였던 배릿의 흥망성쇠를 잘 요약해 주었다. 워터스는 "내가 느낀 것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드의 사라짐에 대한 그 정의할 수 없는, 불가피한 우울함을 말이죠."라고 말했다.[38]
앨범 작업 중, 배릿이 예고 없이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밴드 멤버들은 처음에 배릿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의 외모는 변해 있었다. 워터스는 이 경험에 매우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38] 스톰 소거슨이 디자인한 앨범 표지는 사람들이 "화상을 입을까 봐" 진실된 감정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표지에는 두 명의 사업가가 악수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불타고 있다. 위시 유 워 히어는 1975년 7월 네브워스에서 열린 야외 음악 축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9월에 발매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38]
2. 5. 1. 《Animals》(1977)

1975년, 핑크 플로이드는 이즐링턴의 35 브리타니아 로우에 있는 3층짜리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녹음 스튜디오와 저장 공간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39] 1976년, 그들은 새로 완공된 24트랙 스튜디오에서 열 번째 앨범인 ''애니멀스''를 녹음했다.[40] 이 앨범의 콘셉트는 로저 워터스가 고안한 것으로, 조지 오웰의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구성되었다. 가사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개, 돼지, 양으로 묘사한다. 힙노시스는 패키징 작업에 대한 크레딧을 받았지만, 워터스는 최종 콘셉트를 디자인하여 낡은 배터시 발전소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 위에 돼지의 이미지를 겹쳐 놓았다.
로열티 배분은 곡별로 로열티를 받는 밴드 멤버들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길모어가 앨범의 거의 전체 A면을 차지하는 "도그스"를 주로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짧은 2부작 "피그스 온 더 윙"을 작곡한 워터스보다 적은 로열티를 받았다. 라이트는 "내 잘못도 있었어요. 내 음악을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데이브는 내놓을 만한 것이 있었고, 거기에 겨우 두 곡 정도만 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메이슨은 "로저는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지만, 데이브를 정말로 억누르고, 고의적으로 좌절시키고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첫 아이 출산으로 정신이 산만해진 길모어는 앨범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메이슨과 라이트도 ''애니멀스''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라이트는 결혼 문제를 겪고 있었고, 워터스와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었다. ''애니멀스''는 라이트가 작곡 크레딧에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핑크 플로이드 앨범이었다. 라이트는 "바로 그때 로저가 자신이 밴드의 유일한 작곡가라고, [우리가]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건 자신 덕분이라고 진짜로 믿기 시작했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갈등을 빚을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1월에 발매된 ''애니멀스''는 영국 차트에서 2위, 미국 차트에서 3위에 올랐다. ''NME''는 이 앨범을 "가장 극단적이고, 끊임없고, 가슴 아프고, 완전히 우상 파괴적인 음악 덩어리 중 하나"라고 묘사했고, ''멜로디 메이커''의 칼 달라스는 이를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최면술적인 매체에서 불편한 현실의 맛"이라고 불렀다.
핑크 플로이드는 "인 더 플레시" 투어 중에 ''애니멀스''의 대부분을 공연했다. 이는 밴드가 처음으로 대형 경기장에서 공연한 경험이었고, 그 규모 때문에 밴드는 불안감을 느꼈다. 워터스는 공연 후 즉시 떠나면서 각 공연장에 혼자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라이트가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밴드를 그만두겠다고 위협했다.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관객석 앞줄에 있는 시끄럽고 열광적인 팬들이 워터스를 너무나 짜증나게 했고, 그는 그중 한 명에게 침을 뱉었다. 투어의 끝은 길모어에게 침체기를 가져왔고, 그는 밴드가 원했던 성공을 거두었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
2. 5. 2. 《The Wall》(1979)
1978년 7월, 핑크 플로이드는 부주의한 투자로 인해 재정 위기를 겪었다.[41] 이 위기 속에서 로저 워터스는 다음 앨범을 위한 두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벽돌들(Bricks in the Wall)'이라는 작업 제목의 90분짜리 데모였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워터스의 첫 솔로 앨범인 히치하이킹의 장단점(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이 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벽돌들'을 선택했다.[41]밥 에즈린(Bob Ezrin)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40페이지 분량의 대본을 작성했다.[41] 에즈린은 워터스의 어린 시절 경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의 사망을 바탕으로 '핑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핑크는 음악 산업에 좌절하고 우울해지며, 이는 시드 배럿의 몰락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앨범 마지막 부분에서 핑크는 벽을 허물고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된다.[41]
녹음 과정에서 밴드는 리처드 라이트의 기여 부족에 불만을 품고 그를 해고했다.[42] 길모어는 라이트가 앨범에 가치 있는 기여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42] 결국 라이트는 밴드를 떠났지만,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투어에 유료 뮤지션으로 고용되었다.[42]
''더 월''은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 싱글의 지원을 받아 발매되었으며, 이 싱글은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43] ''더 월'' 앨범은 1979년 11월 30일에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5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는 3위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RIAA에 의해 23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6위에 올랐다.[45]
제럴드 스카프(Gerald Scarfe)는 ''더 월'' 투어를 위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어머니', '전처', '교장 선생님' 등 캐릭터를 묘사하는 거대한 풍선 인형 제작을 의뢰받아 공연 중에 사용되었다. 밴드 내 관계는 최악에 달했고, 워터스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공연장에 도착하고 다른 멤버들과 다른 호텔에 머물렀다. 라이트는 유료 뮤지션으로 복귀하여 투어에서 이익을 얻은 유일한 멤버가 되었다.
''더 월''은 ''핑크 플로이드 - 더 월''이라는 영화로 각색되었다. 앨런 파커(Alan Parker)가 감독을 맡았고, 애니메이션 시퀀스와 배우들이 대사 없이 연기하는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밥 겔도프(Bob Geldof)가 핑크 역을 맡았으며, 영화는 1982년 7월 영국에서 개봉되었다.[41]
2. 5. 3. 《The Final Cut》(1983)
워터스는 1978년 7월, 핑크 플로이드의 다음 앨범을 위해 두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나는 '벽돌들(Bricks in the Wall)'이라는 작업 제목의 90분짜리 데모였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워터스의 첫 솔로 앨범인 히치하이킹의 장단점(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이 되었다. 메이슨과 길모어는 처음에는 신중했지만 전자를 선택했다.[41]''더 월'' 녹음 과정에서 밴드는 라이트의 기여 부족에 불만을 품고 그를 해고했다. 길모어는 라이트가 "앨범에 어떤 가치 있는 기여도 하지 않았고, 아주, 아주 적게 일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고 말했다.[42] 메이슨에 따르면 라이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프로듀서'라고만 했다." 워터스는 밴드가 라이트가 "오랜 싸움을 벌이거나" 앨범이 완성된 후 "조용히 떠나도록" 합의했다고 말했고, 라이트는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떠났다.
''더 월''은 "머니(Money)"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첫 번째 싱글인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 싱글은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43] ''더 월''은 1979년 11월 30일에 발매되었으며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5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는 3위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RIAA에 의해 2300만 장의 인증 유닛 판매를 기록하며 6위에 올랐다.[45]
2. 6. 데이비드 길모어 시기(1987-1995)
1983년 3월에 발매된 《더 파이널 컷》은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6위에 올랐다.[49] 이 음반의 모든 가사와 음악은 로저 워터스가 작곡했다.[50] 롤링 스톤은 이 음반에 별 다섯 개를 주었고, 커트 로더는 "최고의 업적… 아트 록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했다.[51] 그러나 멜로디 메이커는 싱글로 발매된 "낫 나우 존"의 가사 중 "엿 먹어라(Fuck all that)"라는 후렴구가 "그딴 건 다 집어치워(Stuff all that)"로 순화된 것에 대해 "끔찍함의 역사의 이정표"라고 비판했다.[51]데이비드 길모어는 1984년 두 번째 솔로 앨범 《더 얼굴》(About Face)을 발매했고, 라이트는 데이브 해리스와 함께 지(Zee)를 결성하여 《아이덴티티》(Identity)를 녹음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52] 닉 메이슨은 1985년 8월 두 번째 솔로 앨범 《프로파일스》(Profiles)를 발표했다.[52]
1984년, 길모어, 메이슨, 워터스, 오루크는 핑크 플로이드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지만,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메이슨은 워터스가 이 만남을 "외교가 아닌 기만"으로 여겼다고 회고했다.[52] 이후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가 재결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오루크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하고 피터 러지를 고용했다.[53] 워터스는 EMI와 컬럼비아에 밴드 탈퇴를 통보했고, 길모어는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의 해체를 서두르기 위해 탈퇴했다고 믿었다.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를 "창작적으로는 이미 끝난 힘"이라고 선언하며 밴드 이름 사용을 막기 위해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53]
워터스의 변호사들이 파트너십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워터스는 밴드 이름 사용에 대한 거부권을 얻기 위해 고등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길모어는 핑크 플로이드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로 응답했다.[54] 양측은 1987년 크리스마스 이브, 길모어의 하우스보트인 《아스토리아》(Astoria)에서 법정 외 합의에 도달했다.[54] 2013년 워터스는 소송을 후회했고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상업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55]
2. 6. 1. 《PULSE》(1995)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PULSE》(1995)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 제목에 맞는 내용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전 답변과 동일하게 빈 문자열을 출력합니다.2. 7. 그 후(1995-현재)
핑크 플로이드는 라 카레라 파나메리카나 참가 및 영화 사운드트랙 녹음 등 개인 활동을 했다.[61] 1993년 1월, 데이비드 길모어, 닉 메이슨, 리처드 라이트는 브리타니아 로우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 《디비전 벨》 작업을 시작했다. 세 멤버는 협업하여 즉흥 연주를 통해 소재를 만들었고, 약 2주 후 노래를 만들기에 충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밥 에즈린이 공동 프로듀서로 복귀했고, 1993년 2월부터 5월까지 밴드는 '아스토리아'에서 작업을 이어갔다.[61]계약상 라이트는 정식 멤버가 아니었지만, 1975년 《Wish You Were Here》 이후 처음으로 5곡의 공동 작곡 크레딧을 얻었다.[61] 길모어의 아내이자 소설가인 폴리 샘슨도 작곡에 참여하여, "High Hopes"를 포함한 트랙을 쓰는 것을 도왔다. 에즈린은 이 협업이 처음에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전체 앨범을 하나로 묶었다"고 평가했다.[61] 밴드는 마이클 케이먼을 고용하여 오케스트라 파트를 편곡했고, 딕 패리와 크리스 토마스도 다시 합류했다.[61] 더글러스 애덤스가 앨범 제목을, 스톰 소거슨이 앨범 커버 아트를 제공했다.[61] 소거슨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에서 영감을 얻어, 마주 보는 두 얼굴이 암시적인 세 번째 얼굴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부재하는 얼굴—핑크 플로이드 과거의 유령, 시드 배럿과 로저 워터스"라고 말했다.[61]

다른 앨범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1994년 4월을 발매 마감일로 정하고 투어를 재개했다.[61] 《디비전 벨》은 영국과 미국에서 1위에 올랐고,[61] 영국 차트에서 51주 동안 머물렀다.[61]
1994년 3월 29일, 핑크 플로이드는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노턴 공군 기지 격납고에서 2주 이상 리허설을 한 후, 마이애미에서 디비전 벨 투어를 시작했다.[62] 다양한 핑크 플로이드의 인기곡들을 연주했고, 이후 세트리스트를 변경하여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을 전체적으로 포함시켰다.[62] 투어는 1994년 10월 29일에 종료되었다.[62] 1995년, 라이브 앨범 펄스와 콘서트 비디오를 발매했다.[62] 2004년, 메이슨은 회고록 《인사이드 아웃: 핑크 플로이드의 개인사》를 출판했다.[63]
2. 7. 1. 시드 배럿과 릭 라이트의 죽음
2005년 7월 2일,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 워터스, 길모어, 메이슨, 라이트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라이브 8에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공연했다.[64] 이 재결합은 라이브 8 주최자인 밥 겔도프가 주선했다. 겔도프는 길모어가 거절한 후 메이슨에게 연락했고, 메이슨은 다시 워터스에게 연락했다. 약 2주 후, 워터스는 길모어에게 전화했고, 다음 날 길모어는 동의했다. 밴드는 언론 발표문에서 라이브 8 행사라는 맥락에서 그들의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이들은 런던의 코넛 호텔에서 세트리스트를 계획했고, 이후 블랙 아일랜드 스튜디오에서 사흘간의 리허설을 진행했다. 연습하는 노래의 스타일과 속도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세션은 문제가 있었고, 순서는 행사 전날 결정되었다.[65] "위시 유 워 히얼" 공연 시작 시, 워터스는 관객들에게 "여기 없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특히 시드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길모어가 관객에게 감사를 표하고 무대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워터스는 그를 다시 불러들였고, 밴드는 포옹했다. 라이브 8 이후 일요일 신문에서 이 포옹 사진은 인기가 많았다. 공연 후 일주일 동안, HMV에 따르면 ''에코스: 핑크 플로이드 베스트''의 판매량이 1,000% 이상 증가하고, 아마존이 ''더 월''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하면서 핑크 플로이드 음악에 대한 상업적 관심이 다시 증가했다.[66] 길모어는 이후 이 판매 증가로 인한 수익금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고, 다른 관련 아티스트와 레코드 회사들도 그렇게 하도록 촉구했다. 워터스는 "1985년 이후 몇 년 동안 우리 중 누구도 명예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쁘고 부정적인 시간이었고, 저는 그 부정성에 대한 제 역할을 후회합니다."라고 말했다.
핑크 플로이드는 마지막 투어를 위한 1.36억파운드 상당의 계약을 거절했지만, 워터스는 자선 행사를 위한 경우라면 더 많은 공연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모어는 AP통신에 재결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브 8] 리허설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대감이나 그런 것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저는 거기에 있었고, 그것을 했습니다." [67]
2006년 2월, 길모어는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블리카''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 인터뷰에서 핑크 플로이드가 해체되었다고 발표했다.[68] 길모어는 나이가 들고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핑크 플로이드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와 워터스는 재결합 계획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69][70]
2. 7. 2. 《The Endless River》(2014)
(섹션에 해당하는 내용 없음)3. 음악
핑크 플로이드는 영국의 초기 사이키델릭 음악 그룹 중 하나로,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에서 시작하여 하드 록, 블루스, 컨트리, 포크, 일렉트로닉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113] 1968년 발표된 "Careful with That Axe, Eugene"은 이들이 아트 록 그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스페이스 록, 실험적 록,[113] 애시드 록,[114][115] 프로토-프로그레시브 록,[116] (베릿 시절) 실험적 팝, 사이키델릭 팝, 사이키델릭 록[117]등 다양한 장르로 이들을 설명한다.
1960년대 후반, 언론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사이키델릭 팝, 프로그레시브 팝, 프로그레시브 록[117] 등으로 분류했다. 1968년, 릭 라이트는 "우리가 왜 영국 최초의 사이키델릭 그룹으로 여겨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우리는 결국 재미로 연주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밝혔다.[117] 로저 워터스는 초창기 밴드의 음악적 실험에 대해 "우리는 쓸모없었다. 우리는 전혀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리석고 '실험적인' 무언가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117] 핑크 플로이드는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과 1980년대 앰비언트 음악의 혁신가였다.[117]
핑크 플로이드는 영화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1968년 《더 커미티》를 시작으로 1969년 《모어》, 1971년 《라 발레》(《구름에 가린》) 등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특히 《자브리스키 포인트》 사운드트랙 작업 중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과의 의견 차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117]
워터스의 철학적인 가사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특징 중 하나로, ''롤링 스톤''은 이들을 "독특하게 어두운 비전을 전달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117] 이들의 가사는 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워터스는 공감을 가사의 중심 주제로 꼽았다.[117]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포크송 등을 섞은 록 음악에 몽환적인 사운드, 대규모 장치와 스펙터클을 활용한 라이브 공연,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와 정치 문제를 다룬 문학적·철학적 가사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狂気』(The Dark Side of the Moon)는 5천만 장, 『더 월』(The Wall)은 3천만 장, 『소원을 말해봐』(Wish You Were Here)는 2천3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레코드와 CD 총 판매량은 2억 장에서 2억 5천만 장 이상으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를 기반으로 한 기교파는 아니었다. 그들의 음악은 독특한 긴장감과 고양감을 선사했으며, KLF 등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3. 1. 기술
핑크 플로이드는 음악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혁신적인 밴드였다. 이들은 작곡을 할 때 당시의 여러 새로운 악기들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Meddle 앨범에서는 에코 효과를 위해 Binson사의 Echorec을 사용했다.[240] 또한 테이프를 이용한 루프 기술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1970년 Atom Heart Mother에서 공동 작곡을 담당했던 론 기신에게서 배운 것이다. 루프 기술이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된 앨범은 The Dark Side of the Moon으로, "Money"에서 현금 계산기 소리가 반복되거나, "Speak to Me" 등에서 나타난다.
핑크 플로이드는 주로 비틀즈 등이 작업하면서 당시 최고의 음향 기술을 보유한 곳 중 하나였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Atom Heart Mother와 The Dark Side of the Moon도 이곳에서 녹음되었다. 밴드는 몇몇 앨범에서 쿼드라폰 기술(4 채널 기술)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들은 신시사이저를 주 악기로 구성한 록 밴드 중 하나였으며, 릭 라이트는 Dark Side 앨범에서 EMS Synthi AKS를 사용했다.
워터스는 "러닝 온 더 런", "머신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플래시?"와 같은 핑크 플로이드의 곡들에서 VCS 3 신디사이저를 실험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원 오브 디즈 데이스"의 베이스 기타 트랙에 빈슨 에코렉 2 딜레이 효과를 사용했다.[240]
핑크 플로이드는 ''더 파이널 컷'' 앨범 녹음 당시 혁신적인 음향 효과와 최첨단 오디오 녹음 기술을 사용했다. 메이슨은 주로 3차원 효과를 시뮬레이션하는 오디오 처리 기술인 실험적인 홀로포닉스 시스템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스템은 일반 스테레오 테이프를 사용했지만, 헤드폰을 착용했을 때 소리가 청취자의 머리 주위를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냈다. 이 과정을 통해 엔지니어는 청취자의 귀 뒤, 위 또는 옆으로 소리가 이동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3. 2. 악기
데이빗 길모어는 블루스 음악의 영향을 받아 거의 모든 곡에서 펜더사의 기타를 주로 사용했다.[241] 그는 대부분 스트라토캐스터와 텔레캐스터로 연주했으며, 몇몇 곡에서는 슬라이드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앰프와 이펙터를 이용했다.초기 릭 라이트는 주로 파피사 오르간을 사용했다. 1972년부터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이후에는 많은 신시사이저 연주를 추가했다.
다른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와는 달리, 핑크 플로이드에서 베이스와 드럼은 음악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신시사이저와 기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그들의 음악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는데, 바흐나 베토벤, 낭만주의 음악, 재즈의 영향을 받아[242] 정교한 코드를 작곡하는 릭 라이트와는 달리, 로저 워터스는 단순하고 간단한 곡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롤링 스톤''지의 평론가 앨런 디 페르나는 길모어의 기타 연주가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칭찬하며, 그를 1970년대 가장 중요한 기타리스트이자 "헨드릭스와 반 헤일런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묘사했다.[119] ''롤링 스톤''지는 그를 역대 최고 기타리스트 14위로 선정했다.[119]
2006년, ''Guitar World''지의 기고가 지미 브라운은 길모어의 기타 스타일을 "단순하지만 강력한 사운드의 리프, 대담하고 잘 조절된 솔로, 그리고 풍부하고 앰비언트한 코드 질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119]
3. 3. 보컬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는 대부분 시드 배럿이 불렀지만, 그가 밴드를 떠난 후에는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가 주로 노래를 불렀고, 몇몇 곡에서는 릭 라이트가 참여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이후부터는 객원 보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의 클레어 토리, Wish You Were Here 앨범의 로이 하퍼 등이 대표적이다.Atom Heart Mother 앨범부터는 코러스도 많이 사용되었다. 로저 워터스가 주도권을 잡은 1973년 이후에는 코러스 비중이 더 커졌으며, The Wall 앨범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최고조에 달했다.
3. 4. 영향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많은 후대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243] 핑크 플로이드와 Yes의 음악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드림 시어터는 2005년 존경의 의미로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앨범 전곡을 공연하기도 했다.프로그레시브 록뿐만 아니라 라디오헤드는 종종 핑크 플로이드에 비교되며[244], 방겔리스나 키타로 등의 뉴에이지 아티스트도 그들에 대한 영향을 언급했다[245]. 펄 잼("Interstellar Overdrive"), 푸 파이터스("Have a Cigar") 등 많은 밴드들이 그들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핑크 플로이드는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영향력 있는 록 밴드 중 하나이다.[125]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미국에서는 7천 5백만 장의 인증된 음반과 1993년 이후 미국에서 의 앨범을 판매했다.[126]
2003년, ''롤링 스톤''의 역대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 목록에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43위,[128] ''더 월''이 87위,[129] ''위시 유 워 히얼''이 209위,[130] ''파이퍼 앳 더 게이츠 오브 돈''이 347위에 올랐다.[131] 2004년, ''롤링 스톤''의 역대 가장 위대한 500곡 목록에는 "컴포터블리 넘"이 314위, "위시 유 워 히얼"이 316위, "어나더 브릭 인 더 월, 파트 2"가 375위에 올랐다.[132]
2004년, MSNBC는 핑크 플로이드를 "역대 최고의 록 밴드 10선" 목록에서 8위로 선정했다.[133] 같은 해, ''Q''는 "최고 앨범 판매량, 최대 헤드라이닝 공연 규모, 영국 앨범 차트에서 기록한 총 주수"를 측정한 점수 시스템에 따라 핑크 플로이드를 역대 최고의 밴드로 선정했다.[134] ''롤링 스톤''은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 목록에서 51위로 선정했다.[135] VH1은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 목록에서 18위로 선정했다.[136] 콜린 라킨은 그의 ''올 타임 톱 1000 앨범''에 포함된 각 아티스트의 앨범에 대한 누적 투표를 기반으로 한 '역대 최고 아티스트 50인' 목록에서 핑크 플로이드를 3위로 선정했다.[137]
핑크 플로이드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1981년 오디오 엔지니어 제임스 구스리는 ''더 월''로 "최고의 비클래식 앨범 엔지니어링" 부문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로저 워터스는 1983년 ''더 월'' 영화의 "어나더 브릭 인 더 월"로 "영화를 위해 작곡된 최고의 오리지널 곡" 부문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했다.[140] 1995년, 핑크 플로이드는 "마룬드"로 "최고의 록 연주곡" 부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141] 2008년, 핑크 플로이드는 현대 음악에 대한 공헌으로 스웨덴 폴라 뮤직 프라이즈를 수상했다.[142] 1996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 2005년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2010년 히트 퍼레이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43]
핑크 플로이드는 데이비드 보위(시드 배럿을 중요한 영감의 원천), U2의 더 엣지(애니멀스''의 "독스"의 오프닝 기타 코드를 듣고 첫 딜레이 페달을 구입)를 포함하여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144]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밴드와 아티스트로는 퀸, 라디오헤드, 스티븐 윌슨, 마릴리온, 퀸즈라이크, 나인 인치 네일스, 더 오브 및 더 스매싱 펌킨스가 있다.[145] 핑크 플로이드는 1980년대에 등장한 네오 프로그레시브 하위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146]
핑크 플로이드는 몬티 파이썬 코미디 그룹의 팬이었으며, 1975년 영화 ''몬티 파이썬과 성배''의 제작 자금을 지원했다.[148] 2016년, 핑크 플로이드는 비틀즈 이후 두 번째로 영국 우표 시리즈에 등장했다.[149] 2017년 5월, 핑크 플로이드의 첫 번째 싱글 발매 50주년을 기념하여 ''데어 모털 리메인스''라는 오디오-비주얼 전시회가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150] 이 전시회에서는 표지 그림 분석, 무대 쇼의 컨셉 소품, 닉 메이슨의 개인 아카이브 사진 등이 전시되었다.[151][152]
4. 음반 목록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1967)
- A Saucerful of Secrets (1968)
- More (1969)
- Ummagumma (1969)
- Atom Heart Mother (1970)
- Meddle (1971)
- Obscured by Clouds (1972)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 Wish You Were Here (1975)
- Animals (1977)
- The Wall (1979)
- The Final Cut (1983)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1987)
- The Division Bell (1994)
- The Endless River (2014)
5. 투어
핑크 플로이드는 라이브 음악 공연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화려한 무대 연출로 유명했다. 그들은 혁신적인 음향 효과와 쿼드러포닉 스피커 시스템을 사용하여 음질에서도 높은 수준을 설정했다.[121] 초기부터 런던의 UFO 클럽과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면서 사이키델릭 음악에 시각 효과를 사용했다. 그들의 슬라이드 및 조명 쇼는 영국 록 음악계 최초 중 하나였으며, 이는 그들이 런던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인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66년 런던 자유학교의 잡지 ''International Times'' 출시를 기념하여 라운드하우스 개장식에서 2,000명 앞에서 공연했으며, 폴 매카트니와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1966년 중반, 로드 매니저 피터 윈-윌슨은 편광판, 거울 및 늘어난 콘돔 사용을 포함한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밴드의 조명 장비를 업데이트했다. EMI와의 음반 계약 후, 핑크 플로이드는 당시 사치스러운 밴드 수송 수단으로 여겨졌던 포드 트랜짓 밴을 구입했다. 1967년 4월 29일, 런던 알렉산드라 궁전에서 열린 ''14시간 테크니컬러 드림''이라는 올나잇 이벤트의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 핑크 플로이드는 네덜란드에서 밴과 페리로 오랜 여정을 마치고 새벽 3시경 축제에 도착하여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무대에 올랐다. 1969년 7월, 우주 관련 음악과 가사로 인해 아폴로 11호 달 착륙의 BBC TV 생방송에 참여하여 "문헤드"라는 연주곡을 연주했다.
1974년 11월, 그들은 라이브 공연의 주요 특징이 될 큰 원형 스크린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77년, 그들은 "알지"라는 큰 풍선으로 만든 돼지를 사용했다. 헬륨과 프로판으로 채워진 알지는 관객 위로 떠다니다가 인 더 플레시 투어 중 큰 소리로 폭발했다. 투어 중 관객의 행동과 장소의 크기는 그들의 컨셉 앨범 ''더 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월 투어에서는 밴드와 관객 사이에 약 12.19m 높이의 벽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벽에 애니메이션을 투영했고, 틈새를 통해 관객은 이야기의 다양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거대한 풍선을 제작 의뢰했다. 이 투어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Comfortably Numb"의 공연이었다. 워터스가 어둠 속에서 첫 번째 소절을 부르는 동안 길모어는 벽 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가 오면 밝은 파란색과 흰색 조명이 갑자기 그를 드러냈다. 길모어는 캐스터가 달린 플라이트 케이스 위에 서 있었는데, 이는 기술자가 뒤에서 지탱하는 불안정한 설치였다. 큰 유압식 플랫폼이 길모어와 기술자 모두를 지지했다.
디비전 벨 투어 동안, Publius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익명의 사람이 인터넷 뉴스그룹에 메시지를 게시하여 팬들에게 새 앨범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 것을 요청했다. 이스트 러더퍼드에서 열린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 무대 앞의 흰색 조명은 Enigma Publius라는 단어를 표시했다. 1994년 10월 20일 얼스 코트에서 열린 TV 방송 콘서트에서 누군가가 "enigma"라는 단어를 무대 배경에 큰 글자로 투영했다. 메이슨은 나중에 그들의 음반사가 밴드가 아닌 Publius Enigma 미스터리를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주요 투어'''
연도 | 투어 제목 |
---|---|
1968 | 핑크 플로이드 월드 투어 |
1969 | 맨 앤 더 저니 투어 |
1970-71 | 아톰 하트 마더 월드 투어 |
1971 | 메들 투어 |
1972–73 |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투어 |
1974 | 프랑스 여름 투어 |
영국 겨울 투어 | |
1975 | 위시 유 워 히어 투어 |
1977 | 인 더 플레시 투어 |
1980–81 | 더 월 투어 |
1987–89 | 어 모멘터리 랩스 오브 리즌 투어 |
1994 | 더 디비전 벨 투어 |
참조
[1]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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